일민미술관 기기기 전시는 왜 낯설게 남았을까요?

요즘 전시 제목을 훑다 보면 ‘기기기’처럼 소리부터 눈에 걸리는 이름이 드물다. 일민미술관의 《기.기.기(奇.己.氣): 동시대와 시행착오》도 그랬다. 이름만 보면 기계나 괴담을 다룬 전시 같지만, 실제로는 익숙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어긋남을 여러 작가의 방식으로 풀어낸 기획전이다. 2026년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렸으므로 지금은 관람할 수 없다. 뒤늦게 이름을 발견했다면 전시 종료 여부부터 확인하는 게 맞다.
기기기, 같은 소리 세 번에 담긴 뜻은?
세 개의 ‘기’는 각각 기이할 기(奇), 자기 기(己), 기운 기(氣)다. 일민미술관은 정상이라고 여겨 온 범위에서 벗어나는 감각, 고정되지 않는 자기 자신, 말로 붙잡기 어려운 분위기를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제목이 장난스럽게 들려도 다루는 이야기는 꽤 묵직하다.
부제인 ‘동시대와 시행착오’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통 시행착오라고 하면 실패를 거쳐 정답을 찾는 과정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전시가 주목한 건 깔끔한 답에 도착하는 순간보다 현실이 삐걱거리는 순간이다. 매끄럽게 돌아가는 듯한 일상에서 이상한 틈을 발견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작품을 보며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멈칫하는 반응 자체가 전시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왜 하필 일민미술관 건물이 중요했을까?
이번 전시는 일민미술관 건축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속 프로그램의 첫 순서였다. 지금 미술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1926년 12월 완공된 옛 동아일보 사옥이다. 일민미술관의 전시 소개에 따르면 그보다 앞선 1919년 화재로 주변 건물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 사옥이 들어섰다. 전시는 이렇게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이 겹친 장소에서 시작한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동시대’라는 말도 조금 달리 들린다. 새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도 이전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지금의 이미지와 기술에도 오래된 욕망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다. 광화문 한복판의 오래된 건물에서 현재의 불안을 다룬 셈이니, 전시장 자체가 작품을 읽는 단서가 된다. 건물 이야기가 전시 설명의 앞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 7팀은 그 틈을 어떻게 보여줬나?
참여 작가는 송민정, 아그네스 퀘스천마크, 언메이크랩, 오웬 라이언, 유지오, 제니퍼 칼바료, 홍은주까지 7팀이다. 회화와 조각, 영상, 설치 등 접근법이 달라서 하나의 장면으로 전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신 각자가 현실의 어긋남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따라가면 제목의 세 가지 ‘기’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가령 언메이크랩의 영상 작업 《망가진 트로피》는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이미지의 이상한 결과물을 통해 인간의 선택과 욕망을 다시 보게 한다. 오웬 라이언은 신문 이미지와 기록을 엮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시각 정보가 어떻게 힘을 얻는지 건드린다. 둘 다 익숙한 매체를 쓰지만, 결과는 묘하게 낯설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라 더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유지오는 출처와 기능을 단번에 알기 어려운 재료를 엮어 불안한 감정을 조각으로 드러냈고, 제니퍼 칼바료는 오래된 종교 이미지와 회화의 전통을 다시 다뤘다. 송민정의 작업은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이어지는 시대의 분위기에 가까이 간다. 기술, 오래된 이미지, 개인의 감정이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하지만 모두 ‘지금 우리가 보는 세계가 정말 안정적인가’라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전시를 놓쳤다면 무엇을 기억하면 될까?
확인된 관람 정보는 분명하다. 《기.기.기》는 일민미술관 2·3전시실과 프로젝트 룸에서 열렸고, 2026년 5월 31일 종료됐다. 당시 안내된 일반 관람료는 9천 원, 만 24세 이하 학생 관람료는 7천 원이었다. 이 금액을 현재 열리는 다른 전시의 요금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자. 전시와 운영 정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제목 때문에 기괴한 볼거리만 기대했다면 의외였을 수도 있다. 이 전시가 오래 남기는 건 낯선 이미지 자체보다, 늘 보던 이미지와 장소를 갑자기 낯설게 느끼게 하는 시선이다. 뒤늦게 《기.기.기》를 알게 된 지금도 그 질문은 꽤 생생하다. 광화문을 지날 때 오래된 건물의 표면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