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백만장자 족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요즘 방송에 나온 족발집을 찾다가 ‘이웃집 백만장자 족발’이라는 검색어를 자주 보게 됐다. 어느 동네 맛집 한 곳을 소개한 편인가 싶었는데, 이야기는 훨씬 컸다. 2026년 5월 20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의 주인공은 족발 프랜차이즈를 이끄는 신신자 대표다. 가맹점주로 시작해 본사를 인수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출연진도, 보는 사람도 눈길이 갈 만했다.
방송 속 족발은 어느 브랜드일까?
신신자 대표가 이끄는 회사는 장충동왕족발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기업 사례 자료에도 신 대표가 장충동왕족발의 대표자로 소개돼 있다. 다만 ‘장충동 족발’처럼 들리는 이름만 보고 아무 족발집이나 같은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헷갈리기 쉽다. 방송에 나온 인물과 회사를 찾는다면 ‘신신자 대표’와 ‘장충동왕족발’을 함께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EBS가 소개한 연 매출은 400억 원 규모다. 이 숫자는 신 대표 개인이 한 해에 벌어들인 돈이나 특정 매장 한 곳의 매출을 뜻하지 않는다. 회사의 사업 규모를 보여주는 수치다. 방송에서 공개된 공장도 동네 족발집 주방과는 차원이 달랐다. 약 2만 평 부지에 족발 생산 시설뿐 아니라 김치 공장, 음료 공장, 직원 기숙사와 어린이집까지 갖췄다고 한다. EBS의 방송 전 소개 자료에는 족발·편육·순대 등의 하루 생산량이 약 20톤으로 나온다.
가맹점주가 어떻게 본사 회장이 됐을까?
신 대표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족발로 시작되지 않는다. EBS 방송 후 자료에 따르면 그는 29세 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전에서 경양식 레스토랑을 열었다. 장사가 잘돼 1980년대 기준 월 순이익 1천만 원 이상을 올렸고, 창업 5년 만인 34세에 세 들어 있던 건물을 사들였다. 그런데 이후 남편의 빚 보증 문제로 약 10억 원의 빚을 떠안으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산으로 내려가 족발 장사에 뛰어든 것도 그때다. 아이들의 돌반지까지 팔아야 했다는 사연이 방송에서 공개됐다. 신 대표는 가맹점을 운영하며 전국 가맹점 가운데 매출 1위를 기록했고, 나중에는 경영난을 겪던 본사를 인수했다. ‘족발 부자’라는 말만 보면 단숨에 성공한 듯하지만, 방송이 보여준 과정은 건물주가 됐다가 빚을 지고 다시 가게 현장으로 돌아간 굴곡에 가깝다.
장사 이야기도 꽤 현실적이다. 서장훈이 프랜차이즈라면 음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매출 1위를 했느냐고 묻자, 신 대표는 잘되는 집의 첫 번째 조건이 음식 맛만은 아니라는 취지로 답했다. 손님을 대하는 방식과 매장 운영이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차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방송에서 소개된 손님 신발을 닦았다는 일화가 그 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족발 공장에서 눈에 띈 장면은?
방송에는 생족발을 씻고 손질한 뒤 육수에 삶아 건조하는 과정이 등장했다. EBS는 41년째 이어온 육수라고 소개했다. 김치와 동치미를 만드는 현장도 함께 공개됐다. 족발만 덩그러니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곁들여 먹는 음식까지 만드는 규모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식 장면은 분위기가 또 달랐다. 장예원이 갓 썬 족발을 맛있게 먹자 신 대표는 많이 먹으면 질린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서장훈이 바로 삶은 족발을 칭찬했을 때도 담백하지만 감칠맛은 부족하다는 취지로 평했다. 자기 제품을 무조건 치켜세우지 않는 반응이 오히려 방송의 재미였다. 서장훈은 쫄깃한 족발과 갓 버무린 김치에 만족감을 보였다. 이 장면은 출연자의 현장 시식 반응이지, 모든 매장의 맛이 똑같다는 뜻은 아니다.
매출보다 오래 남는 신 대표의 이야기
EBS 방송 후 자료에는 신 대표가 대전에 있는 건물의 임대료를 37년째 올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담겼다. 자신은 26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며, 직원들을 위해 반값 아파트를 지어주고 싶어 땅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아파트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이다. 이미 직원용 주택이 완공됐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편을 보고 남는 건 ‘연 매출 400억’이라는 큰 숫자만이 아니다. 가맹점 계산대 앞에서 손님을 맞던 사람이 본사 운영까지 맡게 된 과정, 그리고 공장과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함께 보인다. 족발 한 접시 뒤에 이런 시간이 쌓여 있었다는 점이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